히가시노 게이고의 『블랙 쇼맨과 이름 없는 마을의 살인』

이 소설은 도쿄에 사는 가미요 마요가 어느 날 친구 이케나가 모모코에게 중학교 동창회에 참석할 거냐는 전화를 받으며 시작된다. 마요의 아버지 가미요 에이치는 중학교 교사로 부임했었고, 학창 시절 마요는 아버지의 반에서 학급 생활을 했기에, 중학교 친구들과 그다지 가깝게 지내진 못했다. 코로나를 핑계로 동창회를 피할까 고민하던 중,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건강하던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 그것도 살인 사건이라는 연락이다.
고향에 도착하자마자 경찰의 조사가 이어진다. 알리바이 확인, 친족 범행 가능성 등 형식적인 질문들이 쉴 새 없이 쏟아진다. 정신없는 취조가 이어지던 와중, 어릴 적 잠깐 본 적 있는 삼촌 가미요 다케시가 나타난다. 다케시는 미국에서 활동하던 유명 마술사로, 마술사 특유의 화법으로 분위기를 단번에 장악한다. 그리고 손기술을 이용해 경찰의 핸드폰도 몰래 빌려 수사 상황까지 파악하고, 경찰만 믿고 기다릴 수 없다며 마요와 함께 아버지를 죽인 범인을 직접 찾아 나선다.
삼촌 다케시는 특유의 화법으로 사람들에게서 듣고 싶은 말을 자연스럽게 끌어내며 조사를 이어간다. 그 과정에서 마요의 고향에 살고있던 중학교 동창생들이 하나둘씩 얽히기 시작한다. 이 마을은 관광객들로 유지되던 곳이었지만, 코로나 이후 급격히 활기를 잃은 상태다. 그런 이들을 하나로 묶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마을을 배경으로 쓰인 소설 환뇌 라비린스다. 가상 환경을 무대로 한 이 소설은 애니메이션화될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었고, 마을 사람들에게는 이 작품을 잘 활용하면 마을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 다케시는 그 연결 지점을 파고들며 사람들의 말 속에 숨겨진 감정과 기억을 끌어낸다. 그리고 결국, 아버지를 죽인 범인을 찾아내게 된다.
이 소설의 매력은 작가가 독자에게 사회 비판이나 철학적인 주제의식 등의 메시지를 던지지 않음에 있다. 대신 아주 잘 짜인 이야기의 재미가 있다. 마술사 출신 삼촌 '블랙 쇼맨'은 질문을 던지고, 분위기를 흔들고, 상대가 스스로 말하게 만든다. 이 과정은 긴장감 넘치는 추격전이라기보다, 사람 사이의 미묘한 공기와 말의 결을 따라가는 과정에 가깝다. 덕분에 독자는 범인이 누구일지 추리하기보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를 느끼게 된다.
이 책은 독자에게 무언가를 전달하려 하기보다, 그저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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